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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충호 화백의 화폭의 섬] 강진역
    칼럼 2021-04-28 09:02:46
    '강진역'이라는 제목의 벽화(사진=김충호) 우리들은 매일 거리와 골목을 통해 소통한다. 골목길은 그 마을의 역사이고 문화유산이다. 과거와 현대사회를 잇는 실핏줄 같은 것이다. 도로, 담장, 대문, 화단, 주민쉼터 등 주거환경 개선 작업 중 하나인 골목길 벽화로 효과를 내는 것이다, 소위 벽화 효과는 정서적, 미적 순화 이상으로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인다. 잘 어촌의 거리와 골목길은 스토리가 아름답고 생동감 있게 되살아난다. 식당과 노점 등이 볼거리와 먹거리, 추억의 장으로 다가선다. 그리고 독창적 거리와 골목 콘텐츠 창출의 도화선이 된다. 관광객 유치와 주거환경 개선, 골목상권 회복으로 이어진다. 김충호(서영화가. 미협 강진지부장)
  • [칼럼] 그리운 섬마을 선생님께
    칼럼 2021-04-22 10:36:10
    함지박만한 섬들과 작은 전마선, 그리고 푸른 바다까지도 섬사람들의 억센 사투리만큼이나 낯설던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면 증동리. 그 곳은 이제 제 어린 시절의 사랑과 기쁨, 외로움과 눈물이 머물러 언제부터인가 가슴 저리도록 마음속을 파고드는 영원한 고향이 되어 버렸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반짝이는 백사장에서 수평선 너머로 해가 기울 때까지 모래성을 쌓으며 먼 훗날의 삶을 꿈꾸어 보던 곳, 선생님께서는 그 곳에서 탯줄 같은 우리의 배움터를 평생토록 가꾸고 지켜 오셨습니다. 신안 흑산도 앞 바다(사진=섬문화연구소DB) 선생님, 지금도 저는 아주 가끔씩 염산 마을로 가는 고갯길을 지나 가파른 오솔길을 뛰어가는 꿈을 꾸곤 합니다. 이름도 잊혀진 산봉우리로 오르는 곳에는 선생님께서 매일 새벽마다 기도드리던 터가 있었습니다. 몇 차례인가 선생님을 따라 숨을 헐떡이며 그 새벽 산길을 오르곤 했었는데, 내일 새벽이라도 선생님 손을 붙잡고 그 곳에 다시 오르고 싶습니다. 그런데, 두터운 코트 깃처럼 언제나 포근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우리를 감싸주시던 선생님을 그동안 한 번 찾아뵙지도 못한 채 그날 선생님의 정년퇴임 소식을 접했습니다. 나의 나태함과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어릴 적 하루해가 짧다하고 들판으로 해변으로 함께 몰려다니던 봉택이, 점수, 여러 친구들과도 안부도 없이 지내온 무심한 저를 또한 나무래 주십시오. 학교 교정을 빙 둘러 울타리처럼 서 있던 아카시아 나무들도 이제는 하늘을 덮을 듯 무성해졌겠지요. 초여름엔 눈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운동장 이 구석 저 구석에 수북이 쌓이던 그 하얀 꽃송이들 .....선생님 몰래 슬금슬금 몇 송이를 따서 한 입 가득 머금으면 솜사탕처럼 달콤한 맛이 입속에 퍼지던 요술 꽃송이들 ...그 정결하고 탐스런 꽃들이 중년이 되어버린 제 눈 속에 어느 날 갑자기 들어 올 때면 그 향기에 파묻혀 펑펑 울고 싶어진답니다. 그 시절 도회지에 계셨던 제 어머님께서는 한 달에 한 두 번씩 그 곳에 오셨지요. 어머님이 오신다는 그 날은 아침부터 선생님의 말씀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겨울바람이 차가운 날에도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큰 염전 너머 십리길 넘는 먼 선착장으로 달려 나가 뱃고동 길게 울리는 천신호가 선착장에 도착할 때까지 밀려드는 파도 위로 수없이 돌팔매질을 하곤 했지요. 그러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혼자 돌아오던 날, 어스름 녘에 퇴근길을 나서시던 선생님을 뵈었지요. “오늘은 어머님께서 못 오시나 보구나. 사내 녀석이 힘내야지...” 하시며 다정한 목소리로 저의 처진 어깨를 다독거려 주시던 일, 그런 아름다운 순간들이 숱한 세월이 지난 이 시간까지도 은빛모래 알처럼 기억 속에서 반짝거리고 있어 저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합니다. 운동장까지 적실 듯 밀려들던 바닷물이 어느 덧 빠져 나가고 끝없이 펼쳐진 모래 평원에서 선생님을 따라 대합을 캐던 날은 우리들이 갑자기 큰 부자가 된 듯 가슴이 부풀곤 했었지요. 밤마다 물소리가 긴 띠를 펼치고 밀려오던 유난히도 달빛이 영롱하던 어느 여름밤, 오랜만에 오신 어머니 곁에 누워서 저의 소망을 말씀드렸답니다. “어머니, 저도 크면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 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가르치는 일에 대한 깊은 정열과 무거운 사명감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는 어린 마음은 그저 존경하는 선생님의 다정하신 모습만을 본받고 싶었던 것이지요. 한평생을 일관하시어 한 길을 걸으시고 이제 그 정상에서 긴 삶의 여정을 돌아보시는 선생님, 그 긴 세월의 모습은 돌에 아름답게 새겨진 당신의 이름보다도 더욱 또렷하게 당신의 당당하신 모습으로 수많은 제자들의 가슴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이제 제가 교단을 떠나갈 세월의 파도소리를 맞고 서 있습니다. 아무쪼록 늘 푸른 백사장의 소나무처럼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십시오. 그리운 선생님... 파도에 밀려 떠 내려 가다가 땅 끝에 걸려 선 작은 섬 꿈결에나 들려질까 아스라한 기억의 한 귀퉁이에서 가을날의 산모퉁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곳 칠흑 같은 여름밤 관사의 양철지붕을 때리는 무더운 빗줄기로 작은 우리 집은 외딴 섬이 되고 해진 동화책을 붙잡고 잠들던 시절 아카시아 꽃처럼 수많은 기억의 편린 속에 또렷이 떠오르는 분 빛바랜 갈색 골덴 양복 속에 항상 사랑스런 미소로 외로움 속의 어린 시절 꿈을 심어 주셨던 바다처럼 넓으신 선생님 세월이 겹쳐, 겹쳐 흘러 지나고 천리 밖에서 처음 듣는 음성이지만 난 금방 알 수 있었네 마음은 어느 새 푸른 서해 바다를 섬광처럼 지나 그 시절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네 그 따스한 넓은 가슴에 안기네 오진곤(서울여대 교수)
  • [시와 풍경이 있는 삶] 오세영 ‘눈’, 최승호 ‘대설주의보’
    문화 2021-01-15 11:22:30
    살을 에는 겨울 추위에 지친 인간은 제각기 자신만의 귀가길을 서두르는데 왜 눈은 하얗게 하얗게 내려야만 하는가 하얗게 하얗게 혼신의 힘을 기울여 바닥을 향해 투신하는 눈 눈은 낮은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녹을 줄을 안다 - 오세영, ‘눈’ 중에서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최승호, ‘대설주의보’ 중에서 한옥마을 설경 2021년 새해 첫 폭설은 대단했다. 그날 저녁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역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대설주의보는 24시간 안에 새로 쌓인 눈이 5㎝ 이상일 때 발령된다. 눈은 대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붙어 지상으로 내리는 것을 말한다. 눈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지우기도 하고, 답답한 사람들에게 마음의 창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눈은 정서와 관점에 따라 기표와 기의가 다르다. 추운 줄도 모르고 눈사람 만들며 깔깔대는 아이들, 폭죽처럼 터지는 눈발 속에서 낭만으로 즐기는 청춘, 막힌 도로에서 애태우는 사람들,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위로가 되는 눈. 최승호 시인의 ‘대설주의보’는 ‘극도로 막힌 삶의 상황’을 상징한다. 1980년대 얼어붙은 한국사회상을 표현했다. ‘백색의 계엄령’은 군부독재에 의한 억압적 사회현실이다. ‘대설주의보’의 ‘눈’은 깊은 골짜기를 가득 메워 외딴 산골마을로 가는 길이 끊겼다. 거센 눈보라 속의 ‘굴뚝새’는 단절된 세상을 극복하는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이다. 한편으로는 설경 속 굴뚝새, ‘은하수’처럼 ‘펑펑 쏟아’지는 산촌의 겨울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기도 한다. 오세영 시인의 ‘눈’은 아래로, 아래로 향하는 눈발이다. 하얀 눈은 ‘순결’의 상징이다. “순한 자만이/자신을 낮출 수 있다”, “인간은 제각기 자신만의/귀가길을 서두르는데”, “바닥을 향해 투신하는/눈은 낮은 곳에 이르러서야/비로소 녹을 줄을 안다”. 이 시에서 ‘눈’은 동양철학이 바탕이다. 곡선과 배려, 비움과 희생, 낮춤과 겸허다. 이기주의, 경쟁지상주의, 진영논리 등으로 아웅다웅하는 세상에 스스로 낮춰 평안한 길을 가라한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 [인터뷰] 섬 전문가 박상건 섬문화연구소장
    칼럼 2020-12-07 15:53:20
    [피플&포커스] 문화·역사 품은 섬에서, 잠시 숨 좀 돌려보세요 “섬은 맑은공기로 영혼 헹굴 마지막 보고” 시인·일반인 어울린 섬사랑시인학교 캠프 “섬 여행은 우리 공동체문화 되살리는 일” [명승일 기자] “우리는 3면이 바다인 해양국가이고, 우리는 해양민족의 후예입니다. 이런 섬의 가치를 깨닫고 사랑하는 일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죠. 부지런히 섬으로 가고 섬과 친하고 섬사람과 교류하는 일은 우리 일상이고 문화이고 창조적인 역사를 일궈 나가는 일입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섬을 답사하고 연구해온 박상건 ‘섬문화연구소’ 소장은 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직접 섬을 다니면서 각 섬의 문화와 역사를 발견해 섬의 가치를 빛나게 하는 전도사 역할을 수행해 왔다. 전남 완도 바닷가에서 태어나 1991년 ‘문학과 지역’으로 등단한 시인이고, 성균관대 언론학박사이며 ‘계간 섬’ 발행인, 동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다. 박 소장은 천지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우리 해양 생태계의 우수성부터 예찬했다. “우리나라 갯벌 면적은 2393㎢로, 세계 5대 갯벌일 정도로 규모가 커요. 서해 83%, 남해 17% 등 이들 갯벌이 지닌 경제적 가치가 연간 9조 9934억원입니다. 또 우리 바다에는 약 900종, 연체류 약 1000종, 갑각류 약 300종, 해조류 약 400종이 분포하고 있죠.” 박 소장은 “이런 천혜의 해양 생태계는 국민의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천혜의 해양 생태계이면서 넉넉한 수산자원을 제공해 자급자족은 물론 경제적 가치를 재생산하는 중요하고 고귀한 자산이며 생명의 보고”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 소장에 따르면, 건강한 섬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다도해 주민의 평균 연소득이 지난 2013년 3859만원에서 2018년 5184만원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이 독도에 틈만 나면 탐욕의 침을 꿀꺽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동해가 세계 4대 어장의 하나인 북태평양서부어장의 중심어장이기 때문”이라며 “무한한 자원을 지니고 있는 광활한 영해를 보존하고, 후손에게 전승하는 일은 우리의 책무”라고 호소했다. 이런 차원에서 박 소장은 우리 일상에서 섬의 중요성을 깨닫고 아름다운 섬을 즐기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 국민은 연간 2000만명이 연안여객선을 타고 섬을 찾고 있어요. 요즈음 연륙교가 많아 승용차나 걷기여행 등으로 섬을 찾는 사람까지 고려하면, 전 국민이 ‘힐링코스’로 섬을 찾고 있는 셈이죠. 낚시 어선 충돌 등 사건·사고 중심의 보도가 아니라, 우리 섬의 문화와 역사를 깨닫고 마음을 치유하며, 자연과 호흡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기사와 정책 발굴이 중요합니다.” 박 소장은 자라나는 청소년이 책 속에서만 이순신과 장보고를 배울 게 아니라,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섬을 여행하고 체험하면서 도전과 응전의 정신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측면에서 요즈음 정부와 지자체에서 걷기코스 개발 등을 추진하는 건 아주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해파랑길은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함께 걷는다는 뜻으로,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총 770Km의 걷기길이죠. 남파랑길은 ‘남쪽의 쪽빛바다와 함께 걷는 길’이란 뜻으로,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거제~통영~남해~여수~고흥~완도~진도~목포~영광까지 남해안에 위치한 영호남 23개 시·군 90개 코스, 1470km 걷기 여행 구간이에요.” 다만, 일부 자치단체에서 기존 길 이름을 고쳐가면서 무분별하게 전시성 길 만들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길이 곳곳에서 생겨나면 혼란스럽고, 여행자의 불편만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하는 박상건 소장(사진=섬문화연구소 제공) 박 소장은 “시장·군수 치적의 길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성과 정서를 고려한 체계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면서 “‘(가칭)섬발전진흥원’이 발족되면 이런 해안길 문제도 일관성과 장기적 관점에서 정립될 것이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해양사와 해양문화를 발전시키는 미래지향적이고 우리 민족적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독도, 마라도, 백령도 등 우리 영해 끝 섬도 ‘통일한국’의 미래를 고려한 치밀하고 포괄적인 국토 정책, 영해 정책, 섬문화 정책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95년 문을 연 섬문화연구소는 우리 아이들에게 원대한 꿈을 심어주고, 일반인에게 섬 지역과 도시 간 소통을 위해 25년째 섬에서 시인과 일반인이 어울리는 섬사랑시인학교 캠프를 열고 있다. 캠프를 개최한 섬의 낙도어린이를 서울로 초청해 주요시설과 문화적 명소를 둘러보는 서울문화체험단 행사, 낙도 재능기부와 시설지원 활동, ‘계간 섬’ 잡지 발행, 무인도 탐방, 독도 연구, 기능적 ‘등대’를 인문학적 문화공간으로 확장하고 국민이 일상에서 해양문화체험공간으로 활용하는 소재발굴과 홍보작업 등도 하고 있다. 국토의 최서남단에 위치한 가거도의 노을(사진=섬문화연구소 제공) 박 소장은 최근 우리 영해문제의 중요성을 지닌 독도, 가거도, 백령도, 통영 홍도 등에 관심을 쏟고 있다. 우리 국민이 당당하게 언제든지 찾아가서 즐기는 해양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 발전시키는 일에도 주목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한적한 섬에서 힐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로 볼 때 섬 여행은 우리네 공동체 문화를 되살리는 길이자 애국하는 일이라고 박 소장은 강조했다. “얼마 전 충청도의 작은 섬을 찾았는데, 여행자들이 땀을 흥건히 흘리면서도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더군요. 해안가와 숲길을 걸으면 저절로 땀이 줄줄 흐르고 불편하기 짝이 없을 텐데, 방역당국 지침에 잘 호응하는 걸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답답하면 섬을 찾았겠어요?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답답하면 훌쩍 떠나서 나를 치유하고, 맑은 공기로 영혼을 헹굴 수 있는 마지막 보고가 섬입니다.” 우리나라 10대 비경인 울릉군 북면 현포리 해안(사진=섬문화연구소 제공) 박 소장은 “한 번은 채우고 채우고 나면 비우면서 수평을 이루는 섬과 바다는 우리의 인간사를 반추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최적의 환경”이라며 “섬 여행은 영양만점의 해산물을 통해 몸보신도 하고, 어민도 돕고 교류하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2020년 12월 5일자 보도를 재 수록한 것입니다.
  • [시와 풍경이 있는 삶] 인생을 음미하는 서정춘 시인의 시집 '하류'
    칼럼 2020-11-11 11:05:10
    팔순의 서정춘 시인이 여덟 번째 시집 「하류」(도서출판 b, 39쪽)를 펴냈다. 31편의 알짜배기 시편들을 묶었는데 짧고 강한 울림의 서정시를 선보이는 시인답게 ‘시인의 말’도 두 줄에 불과하다. “하류가 좋다/멀리 보고 오래 참고 끝까지 가는 거다”. 일반적으로 상류가 하류가 보다 맑고 풍경도 멋질 것 같은데 시인은 ‘하류’에 주목했다. 옷 벗고 갈아입고 도로 벗고 하르르 먼 여울 물소리 - ‘하류’ 전문 계절마다 새싹이 움트고 낙엽이 지고, 다시 윤회하는 그런 자연. 그 자연 속에서 다양한 야생화, 물고기, 새소리, 심지어 하늘과 바람까지 새로 옷을 입고 벗기를 반복한다. 새 생명을 잉태하고, 그렇게 지상에 핀 것들은 다시 껍데기가 되고 밑거름이 되면서 자연은 공존한다. 상류에서 하류에 다다를수록 신비감은 사라기기 마련이다. 대신에 물줄기는 바위에 부딪치고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고 부딪치고 뒤틀리면서 돌멩이들을 더욱 빛나게 다듬는다. 하류로 가는 것들의 이런 몸부림과 아래로 낮게, 낮게 흘러가는 것들의 변화는 희망을 향한 몸짓이다. 저 산봉우리의 한 그루 이름 없는 나무에서 뚝, 맺힌 이슬 한 방울은 그렇게 계곡에 낙엽 지는 소리와 새소리들을 다 모아 계곡의 화음을 만들어 하류를 향한다. 서정춘 시인의 시집 '하류' 물소리는 메마른 하류의 강변과 대지를 적셔 그렇게 하류의 새로운 에너지를 제공한다. 그 에너지가 강물이 되고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이를 노자는 도(道)라고 불렀다. 그렇게 하류의 강변 혹은 계곡으로 내려온 물줄기는 가을을 맞고 겨울을 보낸다. 새로운 잎과 낙엽으로 피고 지고 도로 벗기를 반복한다. 여기서 ‘도로’라는 단어가 자동차와 사람 다니는 도로까지 연상시켜 중의적 표현의 감칠맛까지 내준다. ‘그 자동차도로까지 다 벗고’라고 생각한다면 ‘하류’의 여백과 새로움도 배가돼 이 시의 상상력이 확장된다. 대부분 ‘스스르’라고 표현했을 법한데 이 표현 역시 시인은 ‘하르르’ 리드미컬한 단어로 감각적으로 처리했다. ‘하류’ 어감과 동질성을 회복하며 더 정겹고 따뜻해진다. 그렇게 먼 길을 걸어온 ‘여울 물소리’의 하류는 온갖 찌꺼기들이 합류한 물줄기로써가 아닌 희노애락 혹은 고진감래의 삶들이 하르르 녹아들면서 더불어 젖어들고 풀어지면서 마지막 여정의 카타르시스가 된다. 그래서 ‘여울 물소리’는 ‘여운이 긴 물소리’로 출렁여 온다. “아이들이 눈 오시는 날을 맞아 눈사람을 만드실 때 마침내 막대기를 모셔와 입을 붙여주시니 방긋 웃으시어 햇볕도나 좋은 날에 사그리로 녹아서 입적하시느니”(‘미소展’ 전문) 눈사람은 돌멩이나 막대기로 눈, 코, 입 모양을 만들면서 완성된다. 입은 화룡점정이다. 생명이 없는 막대기가 입이 되어 주면서 새 생명으로 거듭난다. 시인은 아이들의 동작을 높임말로 표현했다. ‘만드실 때’, ‘모셔와’, ‘붙여주시니’, ‘웃으시어’ 그리고 ‘입적하시느니’라는 마지막 문장을 경어 처리했다. 아이가 만든 눈사람은 마침내 햇볕을 만나 스스르 사라진다. 이 과정을 ‘입적’으로 표현했다. 찬란한 햇살에 생을 마감하는 액자그림 속에서 독자는 아이와 이를 바라보는 화자가 된 시인과 스님의 마지막 일생이 오버랩 됨을 느낀다. 부처(붓다)는 산스크리트어로 ‘깨달은 자’, ‘눈을 뜬 자’라는 뜻이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말한다.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을 성불이라 한다. 승려의 죽음을 입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입적과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부처의 전신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이라고 하는데 ‘적멸’은 열반을 뜻한다. 모든 번뇌를 태워 버리고, 기쁨도 슬픔도 없는 마음이 지극히 고요한 상태를 말한다. 해탈의 순간이다. 눈사람은 우리에게 해탈의 순간을 떠올려준다. 자고로 아름다운 인생길은 그렇게 붓다의 깨달음처럼 나날이 깨닫고 버리고 비우면서 가는 길이다. 시 제목이 ‘눈사람’이 아니고 ‘미소展’으로 격상된 배경에서 보듯이 시인은 붓다의 삶처럼, 혹은 윌리엄 워즈워드의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시처럼 그렇게 살고지고 싶었을 게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바라노니 내 남은 나나들이/그 자연의 신성함을 지킬 수 있기를” ‘쪽지’라는 시에서 시인의 이런 심성과 삶의 한 장면을 유추 할 수 있다. “나비시를 지었다/시가 안 돼 접었다/여러 번을 접었다/여러 번을 접었다/다 털고/나비는/날/았/다” 나비의 날개 짓은 털어내는 행위다. 털어내면 털어낼수록 날개 짓은 힘을 동반한다. 그 역동성이 높이 나는 심리적, 물리적인 기제가 된다. 평생 짧게 시 쓰는 일에 매진한 시인은 더 털 것도 없을 것 같지만 ‘여러 번’, ‘여러 번’, 털어내기를 반복한. ‘접었다’는 ‘버렸다’ ‘비웠다’는 것이다. 그렇게 버리고, 비워서, 아름답게 나는 나비처럼 나비시(詩)를 썼던 것이다. 사랑 없이 관심 없이 시를 쓸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사랑과 관심은 속세의 너절한 욕망도, 언어유희 따위의 시작행태가 아니다. 가능한 다 버리고, 비우면서 발원하는 자연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다. 예술에는 오류가 있을지라도 자연에는 오류가 없다. 영국의 시인 드라이든의 일갈이다. 괴테는 “자연의 극치는 사랑이며 사랑에 의해서만 자연에 접근할 수 있다”고 갈파했다. 서정춘 시인의 서정적 풍경화들이 아름다움과 감동을 주는 것은 이러한 자연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깊게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워서/많이 울었을 것이다//사랑해서/죽도록 울었을 것이다”(‘매미사랑’ 전문) 매미는 수컷만 운다. 암컷은 나무 구멍이나 잎사귀에 알을 낳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암컷매미의 아랫배는 발성기관 대신 산란기관으로 채워져 있다. 암컷은 기뻐도 슬퍼도 울지 못한다. 수컷은 매미 집이 침입하거나 열정에 가득 찰 때면 귀가 터질 정도로 울어댄다. 하지만 암컷은 온몸으로 몸부림칠 뿐이다. 서정춘 시인 매미의 삶은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 동안 땅 속에서 유충으로 살다가 지상에서 성충이 된 후 한 달의 삶을 산다. 이 한 달 동안 번식 활동과 지상의 모든 삶을 영위한다. 그러니 더 깊고 열정적인 사랑을 할 수 밖에. ‘그리워서 울고’, ‘사랑해서 죽도록’ 운다. 이런 매미일생을 통해 우리는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정, 자본주의와 경쟁지상주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나마 자연에 눈길 주고 여유와 여백이 있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 시편은 그런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서정춘 시인은 1941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죽편’, ‘봄, 파르티잔’, ‘귀’, ‘물방울은 즐겁다’, ‘캘린더 호수’, ‘이슬에 사무치다’ 등이 있다. 지난 2018년 등단 50주년 기념집 ‘서정춘이라는 시인’을 펴냈다. 박용래문학상, 순천문학상, 최계락문학상, 유심작품상, 백자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 [시와 풍경이 있는 삶] 박노해, ‘밤나무 아래서’
    칼럼 2020-10-16 07:10:21
    이럴 때가 있다 일도 안 풀리고 작품도 안 되고 울적한 마음으로 산길을 걸을 때 툭, 머리통에 꿀밤 한 대 아프다 나도 한 성질 있다 언제까지 내가 동네북이냐 밤나무를 발로 퍽 찼더니 후두두둑 수백 개의 밤톨에 몰매를 맞았다 울상으로 밤나무를 올려봤더니 쩍 벌어진 털복숭이들이 하하하 웃고 있다 나도 피식 하하하 따라 웃어 버렸다 매 값으로 토실한 알밤을 주머니 가득 담으며 고맙다 애썼다 장하다 나는 네가 익어 떨어질 때까지 살아나온 그 마음을 안다 시퍼런 침묵의 시간 속에 해와 달을 품고 어떻게 살아오고 무엇으로 익어온 줄 안다 이 외진 산비탈에서 최선을 다해온 네 마음을 - 박노해, ‘밤나무 아래서’ 전문 두물머리 밤나무 박노해 시인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 수록된 시다. “울적한 마음으로 산길을 걸을 때” 성질나서 밤나무를 찼는데 “후두두둑 수백 개의 밤톨”이 머리로 쏟아졌다. 시상 전개를 위한 설정일 수 있지만, 우리는 무심코 걷어찬 돌멩이로 인해 누군가, 그 무엇에게는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기도 하며 타산지석의 지혜를 깨닫곤 한다. 시인은 “밤나무를 올려봤더니/쩍 벌어진 털복숭이들이 하하하 웃고 있다”. 화해와 깨달음의 순간이다. “하하하 따라 웃”던 시인은 주머니에 알밤을 담으면서 “고맙다 애썼다 장하다”, “네가 익어 떨어질 때까지/살아나온 그 마음을 안다”면서 중의적 화법으로 삶을 반추한다. 돌이켜보면 “시퍼런 침묵의 시간 속에 해와 달을 품고” 살아온 나날이었다. 밤이 알알이 익어가기까지 “어떻게 살아오고 무엇으로 익어온 줄 안다”, “외진 산비탈에서 최선을 다해온 네 마음”이 내 마음이다. 그렇게 시인은 자본주의와 경쟁지상주의 세상에서 정의로운 길을 택해 걸어온 뒤안길을 되돌아본다. 박노해 시인은 1957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노동・생태・평화운동가로 살아왔다. 노동자 생활을 하며 선린상고 야간을 다녔다.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이 출간되자 군사정권은 금서로 지정했다. 그럼에도 시집은 1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결성으로 7년여 수배생활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옥중에서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을 출간했다. 1997년에는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고 석방 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됐지만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면서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시퍼런 침묵의 세월 동안 나눔문화 운동과 이라크 전쟁터에서 아프리카, 중동지역 아이들의 가난과 분쟁 문제를 해결하는 평화활동을 펼쳤다. 2010년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시집, 2014년 ‘다른 길’이라는 사진에세이집을 선보이기도 했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 [김충호 화백의 화폭의 섬] 어부의 힘찬 항해
    칼럼 2020-10-08 10:39:28
    어부의 힘찬 항해 하루 두 번씩 물길이 바뀌는 바다. 그 바다를 터전으로 어촌의 어부들은 생계를 이어간다. 때로는 안개가 자욱해 바다로 가는 길이 막히고 때로는 풍랑주의보가 내려 삶의 길이 막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기쁨과 슬픔을 잘 버무리면서 사는 길, 그것이 인생길이다. 바다는 하루에 두 번씩 그렇게 두 가지의 길을 보여주면서 어부와 동행한다. 마침내 물길이 열리고 어부는 힘차게 항해를 한다. 글・그림: 김충호(서양화가. 한국미술협회 강진지부장) 김충호(서양화가)
  • [시와 풍경이 있는 삶] 김현승, '플라타너스'
    칼럼 2020-09-25 08:48:59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중략) 먼 길에 올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 (중략) ​ 수고론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 김현승, ‘플라타너스’ 중에서 플라타너스(사진=박상건) 이 시는 플라타너스를 대상물로 하여 “네게 물으면”이라는 의인화를 통해 시인의 내면을 투영하고 있다. 이 시는 플라타너스에 감정이입을 통해 고독과 소망을 노래한 사색적이고 명상적이며 자연친화적이다. 플라타너스의 넓은 사랑과 헌신을 흠모한 시인은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 플라타너스와 함께 뿌리내리길 염원한다. 그래서 플라타너스처럼 넓고 푸른 가슴으로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별과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고 싶어 한다. 시인은 플라타너스를 삶의 동반자로서 동일성, 쉬운 단어 활용과 반복적 리듬으로 친밀감을 더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등하굣길은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이었다. 신작로 양편으로 늘어선 플라타너스 길은 높은 하늘을 이고 시골버스, 오일장 오가는 사람들, 논밭에서 일하다 더위를 피하며 새참을 먹던 시솔사람들 풍경을 떠올려주곤 한다. 그런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이 이즈음 천덕꾸러기 신세라 안타깝다. 간판을 가리고 전선을 훼손하며 전망을 가린다는 이유로 가지와 잎사귀가 사각형 모양새로 싹싹 잘려나간다. 시인에게 영감을 준 창작무대인 광주시 양림동 100년 된 플라타너스는 단독주택 공사로 베어져 나갔다. 다형(茶兄) 김현승 시인은 1913년 평양에서 출생했다. 광주 숭일학교 수료 후 숭실전문학교 중퇴, 조선대 교수와 숭실대 교수를 지냈다. 숭일학교 교편생활 중 학교가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사건연루자 혐의로 파면됐다. 광복 후 광주 <호남신문>, 숭일학교 교감을 거쳐 서정주, 김동리, 조연현 등과 중앙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시인의 작품은 고독과 허무 등 인간의 근원적 문제와 절대적 신에게 더 가까이 가려는 의지를 표출하는 작품을 발표했다는 평가다. 4살 아들이 병들었으나 전쟁으로 약 한번 써보지 못한 채 죽자 이 비극을 ‘눈물’이라는 시로 표현했다. 1957년 ‘플라타너스’가 실린 첫 시집 ‘김현승시초’를 비롯해 ‘옹호자의 노래’, ‘견고한 고독’ 등의 시집이 있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 [포커스] 태풍 속 등대의 존재 이유
    이슈 2020-09-04 13:05:14
    제9호 태풍 마이삭(MAYSAK)은 지난달 28일 오후 3시 기준 중심기압 996 hPa, 최대풍속 18 m/s, 강풍 반경 280km의 열대폭풍으로 필리핀 마닐라 동북동쪽 약 1040 km 부근 해상에서 발생했다. 마이삭이란 이름은 캄보디아에서 제출했으며 크메르어로 티크나무를 말한다. 이 태풍은 태풍 바비 보다 더 강했다. 태풍 속 남원등대(사진=섬문화연구소) 마이삭은 제주를 관통해 경남과 전남 해안지대를 뒤흔든 후 거제도, 포항, 울진을 지나 동해안 북쪽 해상으로 빠져났다. 마이삭은 많은 피해를 발생시켜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을 더 힘들게 만들어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그런데 이런 강한 태풍이 몰아쳐도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것이 등대다. 등대는 어두운 바다와 폭우, 폭풍, 태풍 때 조난사고를 당한 선박과 어민들이 등대 불빛을 보고 섬과 해안의 위치를 파악하게 된다. 등대는 이처럼 선박과 어민들의 방향을 일러주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마도로스에게 등대는 해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거점이 되는 표시점이다. 등대를 항로표지라고 부른 이유다. 한 방송 섬과 등대 다큐프로그램에서 등대의 역할을 설명하는 박상건소장(사진=섬문화연구소DB) 세계 최초 등대는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의 등대다. 160미터 되는 높이에 거대한 거울로 불빛을 반사시켜서 40km 밖에서도 불빛이 보였다고 전해진다. 15세기경 지진으로 인해 무너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는 진해 앞바다 망산도라는 섬에서 가야국 때 횃불로 신호를 보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해진다. 근대식 최초의 등대는 117년의 역사를 간직한 인천 팔미도 등대다.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천상륙작전이 이 등대에서 9월 15일 자정 정각에 불빛을 켜면서 이 신호를 시작으로 작전이 펼쳤다. 등대는 해안가 또는 섬에 설치된다. 대형등대가 49곳, 등대관리원이 상주하는 유인등대 38곳이 있다. 방파제 등대 등 무인등대까지 합치면 5289개가 아주 작은 섬마을까지 설치돼 있다. 글・사진: 박상건(등대 전문가. 섬문화연구소장)
  • [화제의 현장] 대한민국의 DNA…공동체문화와 살신성인
    칼럼 2020-09-04 11:13:05
    제9호 태풍 마이삭이 제주도를 시작으로 동해안 지역에 큰 피해를 초래한 가운데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 시가지와 송정리를 연결하는 송정교가 태풍으로 붕괴되기 직전에 인근 주민의 발 빠른 진입 금지 시도로 인명피해를 막아 화제다. 송정교 붕괴 직전 주민이 차량 진입을 막는 모습(사진= 평창군) 평창군에 따르면 어제(3일) 오전 7시2분 출근 시간대에 다리 상판이 휘어진 상황에서 차량이 진입하자 주민이 손을 흔들면서 차량의 진입을 막는 CCTV 영상을 공개했다. 다리를 중간까지 진입한 승용차 운전자는 이를 보고 후진했고 몇 초 후 송정교가 강물에 가라앉았다. 코로나19와 잇따른 태풍 강풍까지 겹쳐 나날이 힘든 국민들에게, 위기를 극복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힘은 바로 이런 우리네 공동체문화와 위기 때마다 살신성인으로 앞장 선 의인들의 DNA에 있다는 점을 되새김질하게 했다.
  • [김충호 화백의 화폭의 섬] 집으로 가는 길
    칼럼 2020-09-03 15:04:35
    내 고향 남쪽 강진에서 자주 만나는 일상의 풍경이다.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시골 길을 엉금엉금 걷는 할머니들의 뒤안길은 김충호 작, '집으로 가는 길' 우리네 어머니의 길이고 고향집으로 가는 길이다.어느 눈내리는 날, 그 길을 걷는 두 할머니의 뒷 모습에서 우리네 어머니, 우리네 인생 길을 바라보왔다. 코로나19에도 무더위에 지친 우리에게연거푸 태풍이 한반도 길을 지우고 있다.그래도 우리에게는 내일의 길이 있다.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가자. 글, 그림: 김충호(화가. 한국미술협회 강진지부장) 김충호 화백(서양화가)
  • [김충호 화백의 화폭의 섬] 해창만에서 만나는 수평의 바다
    칼럼 2020-09-01 10:14:00
    노자 동양철학에 근거한 물은 배려와 비움의 상징이다. 물의 원리는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고 겸허하고 낮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래서 다툼이 없고 허물이 없다. 그런 겸허한 물줄기들이 수직의 삶을 거부하면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김충호, '해창' 작품 ‘해창’은 고향 강진의 해창만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수평선과 한몸이 되는 섬을 바라보면서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한번쯤 음미하게 한다. 강물은 서로 만나 저 바다를 만들고 바다는 한번은 비우고 다시 밀물로 채운다. 그렇게 수평의 바다를 이룬다. 수평적 삶을 사는 자연의 극치는 사랑이다. 글・그림: 김충호(서양화가. 한국미술협회 강진지부장) 김충호(서양화가)
  • [시와 풍경이 있는 삶] 김현승, ‘가을의 기도’
    칼럼 2020-08-21 08:57:53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김현승, ‘가을의 기도’ 중에서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훈민정음 해례본(사진=섬문화연구소DB) 이 시는 김현승 시인의 1957년 첫 시집 ‘김현승 시초’에 실려 있다. 삼라만상의 종말을 알리는 가을을 맞아 내적 깨달음과 충실을 갈망하는 기도시다. 낙엽 지는 가을, 마음 휑할 때 읊조리기에 제격인 시다. 숲에서 한 잎 두 잎 낙엽 지고 마지막 가지까지 탈탈탈 털어낸 후 훨훨훨 바람결에 나부끼는 그 풍경 자체가 ‘겸허한 모국어’다. 그 말없는 풍경 앞에서 더 어찌 표현할 길 없을 때 우리의 모국어는 시어로 빛난다. 말은 생각의 옷이다. 말은 마음의 그림이다. 언어는 화석화 된 시다. 말과 언어는 너와 나를 잇는 창이다. 세상으로 열린 창을 통해 우리는 우리네 아침과 희망을 열고 일군다. 그런데 이즈음 곳곳에서 우리들의 말대가리는 쨍그랑, 쨍그랑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뿐이다. 언어가 난도질당한 현실 속에서 불현듯 이 시가 떠올랐다. 삼류정치, 저질언론, 사이비종교를 통해 현란하게 유통되는 언어는 물어뜯고 공격하는 창과 칼로 둔갑해 휘날린다. 그러는 사이 우리 아이들은 은어와 신조어가 새로운 트렌드가 돼 모국어와 더욱 멀어졌다. 급기야 국적 불문의 언어가 일상의 한복판을 치고 들면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대체어’ 목록을 발표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코드인사’는 편향인사, 혹은 성향인사로, 빅텐트는 초당파연합 혹은 포괄정당으로, 스윙보터는 유동 투표층, 필리버스터는 합법적 의사진행 저지 혹은 무제한 토론, 원포인트 회의는 단건(집중)회의로 바로 잡자고 발표했다. 뉴노멀은 새 기준으로, 언택트는 비대면, 브이로그는 영상일기, 플랫폼 노동은 (온라인) 매개노동, 코호트 격리는 동일 집단격리, 라키비움은 복합문화 공간, 소셜 디자이너는 공동체 (혁신)활동가, 테마주는 화제주, 슬로푸드는 정성음식, 케어 팜은 치유농장을 대체어로 선정했다. 우리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구호에 겉멋 들어간 사이에 그만큼 언어의 중요성과 가치가 상실됐다. 마음과 마음을 잇고, 열어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경계 짓는 상징 기호와 기의로 전락했다. 그런 국민들에게 국어를 연구하는 정부기관이 잠시의 각성을 권고하지만 냉정히 돌아보면 대체어 목록에 순 우리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샘이깊은물> 편집장 시절에 외부 칼럼 원고 하나를 붙든 채 우리말과 토속어로 대체하느라 한나절을 쏟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모국어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그러니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이제는 더 이상 언어를 창과 방패의 불쏘시개로 삼지 말고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글・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세종대왕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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