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삶] 박상건, ‘큰가시고기’

치어들이 아비의 몸을 뜯어가며 눈뜨던 저 신성한 제례 앞에서
박상건 기자 2020-08-14 09:15:42

암컷이 유속에 흔들리며 수초 물어 나르기에 분주하다

그렇게 수초 둥지에 알을 낳고 죽어간 빈자리에

수컷이 밤낮없이 흰 지느러미를 흔들어 쌓는다

물살에 뒤틀리면 돌멩이에 몸을 걸치고 다시금

부화를 위해 줄창진 저 지느러미의 부채질

20여 일을 꼬박 밤새워 흔들어 쌓던 지느러미가

파랗게 멍들어 숨을 멈추던 날

수초더미에서는 가시고기 새끼들이 눈을 뜨고 있었다

치어들이 아비의 몸을 뜯어가며 세상에 눈뜨던 저 신성한 제례 앞에서는

어느 물고기도 아가미를 벌리지는 못했다

유어들이 어미의 속살로 세상 물살 헤치는 동강 섶다리에

아이들이 끌고 가는 송아지의 울음 높이곰 솟는다

 

- 박상건, ‘큰가시고기’ 전문

 

산란기 수컷 큰가시고기(사진=해양수산부)

시집 ‘포구의 아침’(2003)에 실려 있는 졸시다. 큰가시고기는 몸 길이가 9 cm 내외다. 몸빛은 청흑색, 배는 은백색, 치어는 흑청색 무늬가 있다. 등에는 서네 개의 강한 가시가 있다. 

수컷과 함께 수초를 물어 나르던 암컷 큰가시고기는 보금자리에 알을 낳고 일생을 마친다. 수컷은 엄마 없는 둥지에서 새끼들을 보살피기 시작한다. 거친 물살에 보금자리가 뒤틀리면 온몸으로 지느러미를 흔들어 돌멩이를 움직이며 보금자리를 지킨다. 

마침내 새끼는 알에서 깨어나고, 20여 일 동안 혼신을 다하던 수컷은 피멍든 채로 생을 마감한다. 어미는 죽어도 그냥, 죽는 것이 아니다. 

수초더미의 새끼들은 세상을 향해 눈을 뜨고, 힘찬 유영을 준비한다. 치어로 성장하는 동안 죽은 아비의 살붙이를 먹으며 영육을 키운다. 그런 큰가시고기의 신성한 제례 앞에서 어느 물고기도 함부로 아가미를 벌리지 못한다. 

마침내 유어가 되어 힘차게 물살을 헤치며 행렬을 형성한다. 그 물빛 선연한 풍경 위에는 또 하나의 풍경화가 있다. 동강 섶다리에는 아이들이 송아지를 끌고 가는데 그 울음소리 유난히 높게 솟구쳤다. 

이런 큰가시고기 부성애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 사업이 본격화됐다. 해양수산부와 국립수산과학원은 큰가시고기 종자를 강원도에서 채집, 산란과 수정과정을 연구해왔다. 토속 민물어류인 큰가시고기 산란 행동과 생활 특성을 파악해 관상어 품종으로 개발키로 한 것이다. 

큰가시고기는 개체수가 적어서 관상어 품종으로 가치가 높다. 현재 전 세계 관상어 시장 규모는 45조 원, 국내 시장 규모는 4000 억 원 수준으로 급속히 성장 중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는 큰가시고기 종자의 수온, 밀도 등 사육조건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이제 일반인들도 큰가시고기의 아름다운 성장 과정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토속 민물어류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우고 고가의 해외 관상어에 대한 수입대체 효과까지 낼 수 있다니, 큰가시고기는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물고기임이 분명하다.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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