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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로 읽는 섬이야기] 비응도, 해당화 지다(3편)


“할머니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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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으로 시작한 호기심은 점점 짙어갔다. 이 번 기회에 명탐정 실력을 한 번 발휘하고 싶었다.

 

할머니는 갓난아기를 안 듯 보따리를 안고 우리를 앞질러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바짝 뒤따라갔다.

 

“왜, 보따리를 목욕탕까지 들고 왔을까?”

 

“글쎄, 참 별스럽네.”

 

엄마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의 보따리에 대한 집착은 계속되었다. 식사 때도 보따리를 들고 왔을 정도니까.

 

“어머니 그 보따리 이리 주세요. 장롱에 넣어 둘게요.”

 

“아니다!”

 

차갑게 대답하더니, 할머니는 식탁 의자에 끼고 앉았다. 이번에는 등받이가 된 것이다.

 

‘아, 대단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구릿빛으로 물든 할머니 피부가 형광등 불빛 아래서 바삭바삭 부서질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보따리를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할머니가 식탁에서 일어나서 막 내방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전화가 왔다.

 

“네, 여기 계셔요.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가 계신 방문을 바라보며 엄마가 말했다.

 

“이장님이세요. 마을 회의를 했는데 어머니가 보상을 안 받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고 하네요. 당신이 어떻게 설득 좀 해 봐요.”

 

아빠는 걱정스러운 듯 방문을 바라보았다.

 

“당신 내게 할 말 있어?”

 

계속 아빠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엄마가 이상했는지 아빠가 물었다. 이때를 기다리듯 엄마가 아빠 곁으로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여보, 어머니 집 때문에 공사가 중단 됐대요. 보상금을 받으면 이번 기회에 넓은 평수로 옮길 수 있을 텐데.”

 

“당신은 넓은 아파트가 그렇게 좋아?”

 

“그럼, 좋지.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어?”

 

엄마가 얼굴을 붉히며 말하자 아빠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소파에서 일어났다. 나는 놀라서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옆에 있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숨을 쌕쌕거렸다. 엄마의 목표는 어느새 넓은 아파트로 옮겨야 한다는 것으로 정해진 것 같았다. 우리 엄마는 끈질기다. 한 번 정한 목표는 절대로 포기하는 법이 없으니까.

 

그 다음날부터 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애교스럽게 말했다.

 

“어머니, 드시고 싶은 것 있으면 뭐든지 말씀하세요?”

 

애교스런 목소리로 엄마가 말했다.

 

“하루 세끼 밥이면 됐다.”

 

할머니는 먹을 것에도 관심을 쏟지 않았다.

 

“어머니, 그럼〜 목욕도 했으니 멋진 옷 사러 갈까요?”

 

할머니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엄마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애비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 그렇게 낭비 하냐?”

 

엄마를 못 마땅하게 바라보며 할머니는 혀를 쯧쯧 찼다.

 

‘어쩜, 할머니는 엄마의 응흉한 속을 저리도 모를까?’

 

작전이 먹히지 않자 엄마는 짜증스런 얼굴로 부엌으로 갔다. 아마도 부엌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고 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엄마 기분.’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할머니는 보따리를 베고 돌아누웠다.

 

‘아뿔싸, 보따리가 저렇게 여러 가지로 사용되는 줄 미처 몰랐네.’

 

나는 보따리에 대한 별별 상상을 다 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동이 너는 시험공부 안 하고 뭐하니?”

 

엄마가 부엌에서 소리쳤다. 엄마의 심기 불편한 화살이 나에게 날아왔다.

 

굴 까는 섬마을 할머니들(사진=섬문화연구소DB)

 

‘피하자, 불화살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다.’

 

나는 얼른 문제집을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할머니가 오시고 내 공부방은 거실 소파가 된 것이다. 내 방이 없어졌다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보따리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갔다.

 

‘저 보따리에 뭐가 들어있을까?’

 

문제집은 폈지만 나는 머릿속에 온통 보따리 생각뿐이었다.

 

‘할머니가 저렇게 소중히 안고 다니는 것을 보니 분명 귀한 것이 들어 있 을 거야. 그렇다면 돈? 아니야, 짠순이 할머니가 돈을 들고 다니지는 않겠 지. 보석?’

 

“동이야, 물 좀 다오.”

 

“예, 예.”

 

물 컵을 들고 들어가자, 할머니는 퍼석퍼석한 피부를 긁적이고 계셨다.

 

“할머니 등 긁어 드릴까?”

 

“응. 그려.”

 

할머니는 거죽만 남은 등을 내게 내밀었다.

 

“아이구, 시원타. 시원해.”

 

“할머니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뭐예요?”

 

“소중? 글쎄. 어디보자.”

 

미소를 살짝 보여주시던 할머니는 내 얼굴 가까이 머리를 들이밀더니 말했다.

 

“사람 목숨이지.”

 

‘목숨? 목숨을 보자기에 넣고 다닐 수는 없고.’

 

“뭐라고 했냐?”

 

“아, 아니요. 그 다음은?”

 

“에끼. 할미랑 수수께끼 놀이 하자는 거여? 그만 자거라.”

 

할머니는 보따리를 베개 삼아 누웠다.

 

“할머니 푹신푹신한 베개 있는 데 왜 그걸 베어요. 여기 베개 있어요.”

 

“됐다. 나는 이것이 좋아.”

 

‘아, 실패다.’

 

엄마는 할머니 주위를 맴도는 매미 같았다.

 

“어머니, 우리랑 집 합쳐 살아요. 제가 모실 게요.”

 

“내 집 놔두고 왜 여기서 산다냐!”

 

할머니는 엄마를 멀뚱멀뚱 바라보더니 방으로 들어가셨다.

 

엄마의 얼굴은 순간, 벌겋게 달아올랐다.

 

일요일,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거실을 가득 채우고 아빠는 베란다에서 담배만 피웠다.

 

그런데, 나는 숙제 할 책을 가지러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입에서 틀니가 튀어나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틀니가 빠진 할머니 입술은 몹시 쭈글쭈글 했다. 아침에 본 할머니와 전혀 달랐다.

 

‘으, 냄새.’

 

할머니 옷은 노란 오줌으로 젖어 있고 똥냄새도 풍겼다. 얼굴은 하얗게 바래서 오골오골 떨고 있었다.

 

“엄마, 할머니가 좀 이상해!”

 

엄마와 아빠가 뛰어왔다.

 

“어머니, 왜 이러세요. 정신 좀 차려 보세요.”

 

할머니는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엄마는 간병을 위해 병원에 남고 아빠는 내일 출근을 위해 돌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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