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삶] 김현승, '플라타너스'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별이 되고 창이 되는 플라타너스
박상건 기자 2020-09-25 08:48:59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중략)

 

먼 길에 올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중략)

수고론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 김현승, ‘플라타너스’ 중에서 

 

플라타너스(사진=박상건)


이 시는 플라타너스를 대상물로 하여 “네게 물으면”이라는 의인화를 통해 시인의 내면을 투영하고 있다. 이 시는 플라타너스에 감정이입을 통해 고독과 소망을 노래한 사색적이고 명상적이며 자연친화적이다. 

플라타너스의 넓은 사랑과 헌신을 흠모한 시인은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 플라타너스와 함께 뿌리내리길 염원한다. 그래서 플라타너스처럼 넓고 푸른 가슴으로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별과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고 싶어 한다. 

시인은 플라타너스를 삶의 동반자로서 동일성, 쉬운 단어 활용과 반복적 리듬으로 친밀감을 더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등하굣길은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이었다. 신작로 양편으로 늘어선 플라타너스 길은 높은 하늘을 이고 시골버스, 오일장 오가는 사람들, 논밭에서 일하다 더위를 피하며 새참을 먹던 시솔사람들 풍경을 떠올려주곤 한다. 

그런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이 이즈음 천덕꾸러기 신세라 안타깝다. 간판을 가리고 전선을 훼손하며 전망을 가린다는 이유로 가지와 잎사귀가 사각형 모양새로 싹싹 잘려나간다. 시인에게 영감을 준 창작무대인 광주시 양림동 100년 된 플라타너스는 단독주택 공사로 베어져 나갔다.

다형(茶兄) 김현승 시인은 1913년 평양에서 출생했다. 광주 숭일학교 수료 후 숭실전문학교 중퇴, 조선대 교수와 숭실대 교수를 지냈다. 숭일학교 교편생활 중 학교가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사건연루자 혐의로 파면됐다. 

광복 후 광주 <호남신문>, 숭일학교 교감을 거쳐 서정주, 김동리, 조연현 등과 중앙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시인의 작품은 고독과 허무 등 인간의 근원적 문제와 절대적 신에게 더 가까이 가려는 의지를 표출하는 작품을 발표했다는 평가다. 

4살 아들이 병들었으나 전쟁으로 약 한번 써보지 못한 채 죽자 이 비극을 ‘눈물’이라는 시로 표현했다. 1957년 ‘플라타너스’가 실린 첫 시집 ‘김현승시초’를 비롯해 ‘옹호자의 노래’, ‘견고한 고독’ 등의 시집이 있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섬TV

신경림, '갈대'

신경림,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타인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자

타인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자

‘몰디브, 보라보라, 발리......’ 신문에서 자주 접하는 섬들이다. 이곳에는 무성한 야자수와 금가루 같은 백사장, 그리고 돈 많은 관광객이 있다
日・中, 우리바다 넘본 이유

日・中, 우리바다 넘본 이유

대한민국은 3면이 바다인 해양민족이다. 늘 푸른 바다, 드넓은 바다, 3000여 개가 넘는 섬들은 우리네 삶의 터전이자 해양사가 기록되고 해양문화가 탄
화성시 서신면 전곡항 등대

화성시 서신면 전곡항 등대

화성시 전곡항은 시화방조제가 조성되면서 시화호 이주민을 위해 조성한 다기능어항이다. 항구는 화성시 서신면과 안산시 대부도를 잇는 방파제가 건
충남 당진시 송악읍 안섬포구 등대

충남 당진시 송악읍 안섬포구 등대

아산만 당진시 안섬포구는 서해안 간척 시대의 어제와 오늘, 서해 어촌이 걸어온 길과 관광 대중화에 발맞춰 섬과 포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
군산시 옥도면 무녀도

군산시 옥도면 무녀도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신시도에서 고군산대교를 지나면 무녀도다. 무녀도는 선유대교를 통해 선유도와 장자도와 연결돼 차량으로 고군산군도를 여행
(7) 푸른 하늘, 푸른 잎의 미학

(7) 푸른 하늘, 푸른 잎의 미학

봄이 왔다. 푸른 하늘이 열리는 청명을 지나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는 곡우를 앞두고 봄비가 내렸다. 농어촌 들녘마다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나 올 농
(7) 떠나가고 싶은 배

(7) 떠나가고 싶은 배

코로나로 모두가 묶여 있은 세상. 떠나고 싶다. 묶인 일상을 풀고 더 넓은 바다로 떠나고 싶다. 저 저 배를 바라보면서 문득, 1930년 내 고향 강진의 시인
(6) 호미와 삽

(6) 호미와 삽

소만은 24절기 가운데 여덟 번째 절기다. 들녘은 식물이 성장하기 시작해 녹음으로 짙어진다. 소만 무렵, 여기저기 모내기 준비로 분주하다. 이른 모내
신경림, '갈대'

신경림,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그 섬에 다시 갈 수 있을까

그 섬에 다시 갈 수 있을까

아마추어 사진동호회의 총무, K의 전화를 받은 건 며칠 전이었다. 모처럼의 통화였지만 K의 목소리는 어제 만나 소주라도 나눈 사이처럼 정겨웠다. &ldqu
하와이 제도 <7> 하와이 아일랜드

하와이 제도 <7> 하와이 아일랜드

하와이 아일랜드는 하와이 제도에서 가장 크고 제일 어린 섬이다. 빅 아일랜드라는 별명에 걸맞게 다른 하와이의 섬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거의 두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