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건 시인의 섬을 걷다] 전남 여수시 남면 연도 소리도등대

솔개를 닮은 섬, 솔개가 되고픈 섬 그리고 소리도등대
박상건 기자 2021-05-11 08:41:53

금오열도 연도로 가기 위해 서울에서 밤늦게 여수항으로 떠났다. 천안나들목에서 빗줄기가 내리더니 지리산에 접어들자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승용차가 흔들리고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여서 오수휴게소에서 차박을 했다. 

오수는 고려 때 불이 난 것을 모르고 잠든 주인을 구한 충직한 개의 고장이다. 주인은 개가 자신을 구하고자 목숨을 바친 것을 슬퍼해 개의 주검을 묻은 후 자신의 지팡이를 꽂았다. 이 지팡이가 실제 나무로 자랐고 훗날 ‘개 오’자, ‘나무 수’의 ‘오수’라는 지명이 유래됐다. 

소룡단

그 개가 나에게 묻는다. 섬으로 가는 길은 예비 됐냐고. 기상청은 해상날씨를 발표할 때 물결이 다소 이는 경우를 파고 2.0~3.0m, 풍랑주의보는 물결이 높게 이는 3.0~6.0m, 풍랑경보는 물결이 매우 높은 파고 6.0m을 기준으로 한다. 풍랑주의보가 내리면 여객선 운항이 금지되고 섬사람들 어로활동도 통제된다. 풍랑주의보 기준은 풍속이 1초당 14m 이상이 3시간 이상 지속되거나 파고가 3m이상 예상될 때다. 

현재 연도의 파고는 2.0~3.0m. 아슬아슬한 기준이다. 파고가 낮아지길 바라면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승용차를 몰았다. 여수여객선터미널 매표소에 들어서자 전광판에는 ‘거문도 운항통제’라는 안내됐다. 거문도는 먼 바다에 해한다. 연도도 지난 2013년까지 먼 바다 섬으로 분류된 외딴섬이었다. 

연도는 여수에서 남쪽으로 40㎞ 떨어져 있다. 금오도, 안도, 두리도, 개도 등과 함께 금오열도를 이루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끝 섬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은 남해안 서쪽 해상의 섬을 중심으로 국내 최대 면적인 2266만221㎢ 규모다. 다도해는 따뜻한 해양성기후로 다양한 해산물과 상록수림이 우거지고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섬과 기암괴석들이 절경을 이루며 해양생태계이 보존가치가 아주 높다. 장보고 해상왕국과 이순신 전적지가 있는 역사현장이기도 하다. 

연도항 철부선

아침 6시 20분 여수항을 출항한 첫배는 여천, 안도를 거쳐 연도 역포항에 1시간 50분 만에 도착했다. 역포는 제주도로 유배 가는 도중에 거치는 역마터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연도는 동서남북으로 작은 섬들이 에워싸 경비정, 상선 등이 바람을 피해 정박한다. 이날도 앞바다에는 경비정과 대형어선이 정박 중이었다. 

연도는 솔개를 닮아서 ‘솔개 연’, ‘소리개 연’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소리도라고 부른다. 연도 면적은 6.8㎢, 해안선 길이는 35.6㎞. 해안선을 따라 작은 마을버스가 운행한다. 나는 선적한 승용차를 타고 땅포마을을 지나 연도리로 향했다. 연도리는 섬의 중심지로 꽤 규모가 큰 마을이다. 언덕배기에서 내려다본 연도리는 한 폭의 풍경화다. 

연도리 전경

여수 최남단의 연도항은 지난 1999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됐다. 거문도 어장과 인접하고 다양하고 풍부한 수산물로 인해 전국에서 어선들이 몰려든다.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방파제가 두 겹으로 세워졌다. 외항 남방파제등대 모습이 꽤 위엄 있다. 16m 높이의 등대는 14.4km 해상까지 불빛을 비춰준다. 

연도항 방파제등대

연도항 언덕 넘어 당포마을 바닷가로 갔다. 해안기슭 바위섬에 솟은 자연해상분재는 눈부신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이다. 다시 소리도등대로 가는 길목에서 덕포마을을 만났다. 생태습지를 보듬은 한적한 마을의 정면에 231m 필봉산이 솟아있다. 마을 끝자락에 몽돌해수욕장이다. 하늘은 맑고 푸른데 바다는 여전히 거센 파도가 밀려와 몽돌 사이에서 가쁜 숨소리를 몰아쉬고 있다. 

덕포 몽돌해변

몽돌해변에서 동백군락지 숲길을 새소리와 파도소리를 동무삼아 걸었다. 800m 지점에 소리도등대가 있다. 소리도항로표지관리소 정문에 들어서자 여인의 조각상이 눈길을 끌었다. 푸른 잔디밭에 하얀 등대 자태가 평화롭기만 하다. 등대는 파도치는 기암괴석의 절벽 위에 서있고 돌담 밖은 망망대해다. 망망대해에 화룡정점으로 찍힌 무인도. 작도라는 이 섬은 까치섬으로도 부른다. 

소리도등대는 1910년 첫 불을 밝혔다. 111년 동안 여수, 광양, 부산 등을 오가는 선박들의 이정표 역할을 해왔다. 등대는 콘크리트구조물로 내부는 나선형 철제계단이 설치돼 그 원형을 보전중이다. 불빛은 12초마다 한번 씩 반짝이면서 이곳이 소리도등대임을 알려준다. 등대 불빛은 42km 바다까지 비춰준다. 

소리도등대 전경

등대는 과거 해군 주둔지로써 특수임무를 맡은 20여명이 무선국 업무를 병행했다고 한다. 과거 마을사람들도 등대에 접근이 어려웠을 정도로 군사적 요충지다. 현재 등대 좌측의 필봉산 정상에는 군사레이더기지가 있다. 등산객은 기지 앞 시멘트 길만 이용할 수 있다. 등산과 걷기를 좋아한다면 필봉산 숲 등산로를 이용해 동굴숲길을 거쳐 등대로 올 수 있다. 이 구간은 2.8㎞ 거리다.

등대 앞으로 용을 닮은 소룡단이 망망대해로 쭉 뻗어있다. 등대가 있는 해안이 대룡단이다. 용단은 곶을 의미한다. 대룡단은 용머리, 소룡단은 용꼬리 부분이다. 등대는 용머리와 몸통인 셈. 소룡단에는 해상굴, 만작굴, 이심난굴, 용문굴, 심자굴, 정월래굴 등 해식동굴이 산재한다. 

등대 절벽 아래 솔팽이굴이 있다. 굴 안에 들어가면 덕포마을 부엌 솥에서 누룽지 긁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단다. 1627년 네덜란드 상선이 일본에서 황금을 싣고 식민지 인도네시아로 가던 중 해적선에 쫓기면서 이 굴에 황금을 숨기고 본국에 돌아가 성경책에 표시해 뒀단다. 

역포마을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1972년 네덜란드인 3세가 한국 카투사에 근무하던 중 보물지도를 꺼내놓고 이 굴의 이야기를 연도 출신 손 모씨와 나누었는데 소지도(SOJIDO)로 표시된 곳을 자세히 보니 고향 연도였다는 것이다. 굴 안에는 소형선박 50여척이 정박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특히 남쪽해안은 신비로운 해식애가 발달했다. 오랜 풍화작용으로 형성된 기암괴석들은 코끼리바위, 물개바위, 콧구멍바위, 대바위 등으로 불린다. 알마도, 삿갓여, 검둥여, 마당여, 거북여, 고래여 등 무인도와 ‘여’로 부르는 바위섬들이 많다. 볼거리로도 낚시인들에게 입질을 즐기는 해양공간으로도 제격이다. 바위틈에 뿌리내린 색색의 야생화가 해풍에 나부끼고 동백과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숲 풍경은 이곳이 바로 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임을 웅변한다. 

암석지대가 많은 연도는 여수권 최고의 감성돔 낚시터로 꼽힌다. 기암절벽의 경관을 구경하면서 다양한 어종이 입질을 즐길 수 있다. 주요 포인트는 소룡단, 등대 아래, 역포 등을 꼽는다. 등대 아래는 농어와 볼락 입질이 탁월하고 인근 해역에서는 참돔, 감성돔, 볼락, 농어, 삼치, 돌돔, 갑오징어 등이 많이 잡힌다. 해안가 수심은 22m 안팎으로 산호초가 널리 분포해 색색의 해저 비경을 자랑한다. 스킨스쿠버들이 즐겨 찾는 이유다. 

선창가 역포마을

연도는 지난 1995년 7월 씨프린스호 좌초사고로 5천 톤이 넘는 기름이 유출돼 3826㏊ 양식장의 피해가 발생했던 섬이다. 어민들은 당시의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하고 지금의 아름다운 섬으로 일궜다. 풍성한 해산물에 십여 곳의 민박집이 성행했지만 코로나19로 다시 시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하루 여객선이 두 차례만 운항해 주민도 여행객도 공사 등으로 오고가는 인부들도 오후 마지막 배를 기다리며 투덜대기 일쑤다. 금오도~안도까지 연도교가 연결됐지만 연도는 아직도 ‘먼 바다’ 섬이다. 하루빨리 연도사람들도 ‘소리개’처럼 이 바다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연도 소리도등대로 가는 길은 여수항여객선터미널에서 차량선적이 가능한 여객선이 1일 2회 운항하고 1시간 45분 소요된다. 문의: 여수시 관광과(061-659-3877)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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