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 섬에 다시 갈 수 있을까

대천항에서 출항, 삽시도의 특별한 추억
이호준 기자 2021-08-31 12:33:57

아마추어 사진동호회의 총무, K의 전화를 받은 건 며칠 전이었다. 모처럼의 통화였지만 K의 목소리는 어제 만나 소주라도 나눈 사이처럼 정겨웠다. “형님, 날도 슬슬 풀리는데 주말에 섬 출사 한번 갑시다.” “섬 출사라…. 어디로 갈 건데?” 섬이라는 말에 솔깃해진 나는 전화기를 바짝 끌어당겼다. “안면도가 어떨까 하는데요. 회도 좀 먹고 일몰이나 몇 장 건져올까 해서….” “에끼, 이 사람아. 안면도가 어디 섬인가? 육지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동참을 선언해버리고 말았다. ‘섬 여행’이란 말은 주말 휴식을 포기하기에 충분할 만큼 매혹적이었다. 전화를 끊고서도 꽤 오랫동안 섬이란 단어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게 섬의 이미지는 젊은 날에 각인된 한 장면이 전부다. 어느 한순간 흑백의 영상으로 내 안에 들어앉은 섬은, 세월이 가도 퇴색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1970년대 말의 터널 속 같았던 시절. 스무 살의 나는 날마다 절망하고 분노했다. 돌멩이 따위로는 무너지지 않는 독재자, 그 앞에 굴종하고 아부하는 인간군상, 가난, 앞이 안 보이는 미래, 휴지처럼 구겨진 꿈…. 궁극적인 분노의 대상은 용기 없는 나 자신이었다.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수시로 찾아왔다. 비척거리며 걷는 나날이었다. 고통을 줄이는 방법은 술에 취해 잠드는 것이었지만 호주머니에는 먼지나 서식할 뿐이었다. 

대천항(사진=섬문화연구소DB)

그 해에는 종강을 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배낭 하나 메고 길을 떠났다. 시위하다 잡혀가 차가운 시멘트바닥에서 공포와 싸우고 있을 친구들, 돈 몇 푼을 위해 찬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있을 부모님…. 발길은 납덩이를 매단 것 같이 무거웠지만, 또 그런 현실은 비겁한 젊은이의 등을 자꾸 떠밀었다. 장항선 열차를 타고 대천에 도착, 어항(대천항)이란 곳에서 배를 탔다. 그리고 원산도를 거쳐서 삽시도에 도착했다. 삽시도에 특별한 인연이 있는 건 아니었다. 누구에겐가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섬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무조건 찾아간 것이었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 다른 세상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삽시도는 그때까지만 해도 태초의 모습에 더 가까운, 전혀 개발되지 않은 섬이었다. 선착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집에 들어가 묵을 것을 청했다. 평생 파도와 싸우며 살아온 듯한 주인은 두말없이 바깥채의 방 하나를 내주고 불을 지펴주었다. 그렇게 섬에서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날이 밝으면 바닷가로 나가 무작정 걸었다. 될 수 있으면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외지사람이라고는 나 하나 뿐인 섬의 겨울바다는 적막했다. 사람 발자국 하나 없는 백사장, 해안선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진 해송과 기암괴석, 하늘을 나는 갈매기…. 눈에 보이는 세상은 아름다웠고, 만나는 사람들의 눈은 순박하고 따사로웠다. 

삽시도(사진=섬문화연구소DB)

그런 날들을 보내다 보니 내 안에서 뭔가 변화가 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의 통증은 조금씩 줄어들고 막연한 분노도 가라앉았다. 밤새 파도가 친 다음날 아침의 잔잔한 바다 같은 평화가 거기에 있었다. 자연의 힘? 난 지금도 뚜렷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바다와 섬 그리고 섬사람들, 그들은 회초리나 잔소리 없이도 한 젊은이의 치기 어린 성장통을 치료했다는 것이었다. 통증이 사라진 자리에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추위 속에서도 새벽부터 배를 타고 나가거나 뻘을 뒤지는 섬사람들을 보며 내 투정이 얼마나 부끄러운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 얼마 못 가 배낭을 꾸리고 말았다. 

살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섬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곳으로 달려가고 싶다는 열망에 시달린다. 하지만 실행은 계속 뒤로 미루고 있다. 어쩌면 확인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잘못하면 가슴에 간직해온 아름다운 꿈 하나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부의 초막이 있던 자리에 펜션의 불빛이 번쩍일지도 모르는 걱정. 그런 것들이 내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것일 게다. 정은 사라지고 사람 하나 하나가 섬처럼 홀로 떠도는 시대를 살면서, 환상 같은 기억 하나쯤은 영원히 품고 싶은 것일지도…. 

이호준(시인. 전 서울신문 뉴미디어국장)

섬TV

신경림, '갈대'

신경림,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타인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자

타인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자

‘몰디브, 보라보라, 발리......’ 신문에서 자주 접하는 섬들이다. 이곳에는 무성한 야자수와 금가루 같은 백사장, 그리고 돈 많은 관광객이 있다
日・中, 우리바다 넘본 이유

日・中, 우리바다 넘본 이유

대한민국은 3면이 바다인 해양민족이다. 늘 푸른 바다, 드넓은 바다, 3000여 개가 넘는 섬들은 우리네 삶의 터전이자 해양사가 기록되고 해양문화가 탄
화성시 서신면 전곡항 등대

화성시 서신면 전곡항 등대

화성시 전곡항은 시화방조제가 조성되면서 시화호 이주민을 위해 조성한 다기능어항이다. 항구는 화성시 서신면과 안산시 대부도를 잇는 방파제가 건
충남 당진시 송악읍 안섬포구 등대

충남 당진시 송악읍 안섬포구 등대

아산만 당진시 안섬포구는 서해안 간척 시대의 어제와 오늘, 서해 어촌이 걸어온 길과 관광 대중화에 발맞춰 섬과 포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
군산시 옥도면 무녀도

군산시 옥도면 무녀도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신시도에서 고군산대교를 지나면 무녀도다. 무녀도는 선유대교를 통해 선유도와 장자도와 연결돼 차량으로 고군산군도를 여행
(7) 푸른 하늘, 푸른 잎의 미학

(7) 푸른 하늘, 푸른 잎의 미학

봄이 왔다. 푸른 하늘이 열리는 청명을 지나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는 곡우를 앞두고 봄비가 내렸다. 농어촌 들녘마다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나 올 농
(7) 떠나가고 싶은 배

(7) 떠나가고 싶은 배

코로나로 모두가 묶여 있은 세상. 떠나고 싶다. 묶인 일상을 풀고 더 넓은 바다로 떠나고 싶다. 저 저 배를 바라보면서 문득, 1930년 내 고향 강진의 시인
(6) 호미와 삽

(6) 호미와 삽

소만은 24절기 가운데 여덟 번째 절기다. 들녘은 식물이 성장하기 시작해 녹음으로 짙어진다. 소만 무렵, 여기저기 모내기 준비로 분주하다. 이른 모내
신경림, '갈대'

신경림,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그 섬에 다시 갈 수 있을까

그 섬에 다시 갈 수 있을까

아마추어 사진동호회의 총무, K의 전화를 받은 건 며칠 전이었다. 모처럼의 통화였지만 K의 목소리는 어제 만나 소주라도 나눈 사이처럼 정겨웠다. &ldqu
하와이 제도 <7> 하와이 아일랜드

하와이 제도 <7> 하와이 아일랜드

하와이 아일랜드는 하와이 제도에서 가장 크고 제일 어린 섬이다. 빅 아일랜드라는 별명에 걸맞게 다른 하와이의 섬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거의 두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