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건 시인의 '섬을 걷다'] 그대 그리고 나의 낭만과 풋풋한 삶의 향기

동해안 국도7번의 푸른 물결 따라 펼쳐지는 해안선과 포구의 풍경.
박상건 기자 2020-09-15 09:12:19

동해안 국도7번 구간은 태산준령의 해송과 끝없는 수평선, 동해의 푸른 물결 따라 펼쳐진다.

특히 강구항에서 축산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동해안의 환상적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다. 이 구간은 각각의 마을 앞 자를 따서 ‘강축도로’라고 부른다. 

강구항 전경


강구항은 현재 6297명이 사는 경북 영덕군 강구면 소재지다. 강구면의 해안선은 주로 바위로 이뤄졌고 전복, 미역, 김 등 해산물이 풍부하다. 육지가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급격하게 수심이 깊어져 연안어장이 발달했고 삼각망, 정치망 등을 이용한 어업이 성행한다. 

강원도 최북단에 대진항이 있는데 경상북도 영덕에도 대진항이 있다. 26km에 이르는 해안선은 세계적 미항이다. 4km 해안선에 이르는 청정해변이 대진해수욕장이다. 수심이 얕고 물이 맑으며 해안선이 완만하다. 송림이 아름다운 해변으로 가족단위 물놀이 장소로 좋다. 북쪽으로 송천이 흘러들어 자연산 은어를 낚을 수 있고 담수욕도 즐길 수 있다. 인근 고래불해수욕장은 명사20리 해안으로 에메랄드빛 바다와 울창한 송림이 일품이다. 은모래빛 해변은 모래를 밟으며 달리기코스로도 애용된다. 

아름다운 해안선에 옹기종기 모인 어촌 풍경은 울긋불긋한 모양새가 이국적 정취를 자아낸다. 이국적이면서 속살은 향토적 풍경이라는 점은 집집마다 앞마당에 ‘덕장’이 있고 반 건조 오징어인 피데기와 과메기를 갯바람에 널어 말리는 모습이다. 어민들의 삶은 그대로 파도치는 바다와 더불어 생동하는 자연친화적이다. 시골버스 운전사 마음씨도 곱기는 마찬가지. 정류장이 아닌 바닷가에서 학생들과 군인들을 태워주고 내려준다. 머리에 짐을 이고 걷던 아낙들을 태워주는 모습도 드라마 속 낯익은 풍경과 오버랩 됐다. 

해파랑공원 해안길



동해 해안선 풍경은 이처럼 사람도 자연도 정겹다. 이따금 활어를 실은 트럭이 갯물을 흘리며 내달리는 뒤안길에서 동해 어민들이 파도와 함께 살아 파닥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저런 생각의 갈피를 펴주듯 가없이 넓게 펼쳐진 수평선과 어깨 나란히 하며 달려온 그 길의 끝자락에 강구항이 있다. 

강구항의 대명사는 뭐니 뭐니 해도 대게. 강구정류소에서 강구항으로 가는 길에 오십천이 있고 강구대교를 건넌다. 이 대교에서 바로 강구대게거리로 이어지낟. 대게 찌는 수증기 피어오르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식당 주인들은 행인들에게 손짓을 시작한다. 몇 마리 갈매기들도 이방인 어깨를 스치며 하늘로 긴 포물선을 그어가며 반기는 듯하다. 

지금이사 잘 포장된 길 따라 말끔하게 단장한 대게거리로써 편리하게 그 맛을 음미하지만, 오늘의 대게 명성이 있기까지 강구사람들은 동해 파도만큼이나 거센 세월을 헤쳐 왔다. 그 시절 늦가을에서 겨울 무렵엔 집집마다 대게 다듬는 소리로 가득했다. 

“키토산으로 저무는 십 이월/강구항을 까부수며/너를 불러 한잔하고 싶었다/대가지처럼 치렁한 열 개의 발가락/모조리 잘라 놓고/딱, 딱, 집집마다 망치 속에 떠오른 불빛/게장국에 코를 박으면/강구항에 눈이 설친다/게발을 때릴수록 밤은 깊고.” - 송수권, ‘겨울 강구항’ 중에서

강구항 대게거리


남해안의 완도, 진도, 해남 등 어민들은 집집마다 김을 말리는 발장(왕골 띠)을 엮기 위해 밤새 ‘타닥, 탁탁’ 공돌(발장 짜는 기구)을 돌리며 겨울밤을 보냈다. 반면 동해안 강구항 어민들은 “대가지처럼 치렁한 열 개의 발가락/모조리 잘라 놓고/딱, 딱, 집집마다 망치 속에 떠오른 불빛”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것이 바다사람들의 밥벌이였고 강구항의 뿌리 깊은 문화가 됐다. 

이런 어민들의 삶을 소재로 강구항이 배경이 된 드라마가 ‘그대 그리고 나’다. 1997년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 방영된 방송드라마는 외환위기를 극복해가는 온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시청률이 무려 66.9%까지 치솟았다. 

드라마 속의 민규(송승헌)의 꿈과 희망이던 등대. 그 등대가 바로 강구항 오포등대다. 민규(송승헌)가 애견(도규)과 함께 바다로 고기잡이를 떠난 아버지(최불암)를 기다리던 등대와 해변의 추억이 오롯이 담긴 곳이 강구항이다. 

동트는 강구항의 대게와 새들의 조형물


강구항의 명품, 대게는 몸통에서 뻗어나간 8개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곧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게 중에서도 바다밑바닥 개흙이 전혀 없고 깨끗한 모래로만 이루어진 영덕해안에서 잡힌다는 점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살이 가득 차고 맛이 좋다고 전한다. 그래서 영덕대게는 부르는 것이 값이라고 말한다. 색깔은 누런 주황색, 약간 단맛이 있고 쫄깃쫄깃하며 체내 속살이 꼭 차 있는 게 특징이다. 암컷보다 수컷이 크고 맛있다. 어획 시기는 11월에서 다음 해 5월까지로 이 때 껍질이 가장 부드럽다. ‘수산자원보호령’에 따라 여름은 대게잡기가 금지돼 있다. 그래서 늦가을에서 겨울철에 미식가들이 대게거리로 몰린다. 

강구항 횟집들은 활어 회보다는 대게를 주 메뉴로 취급한다. 가게들은 특수 설계된 수족관에 살아있는 대게를 스팀솥에 쪄서 판다. 요즘 어족자원이 줄어들어 대게 잡는 일이 쉽지 않다. 수심 밑바닥서 건져낸 대부분 게는 껍질이 물렁물렁한 홍게(물게, 수게)다. 영덕대게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어부들은 보다 더 먼 바다로 나가 깊은 수심의 대게를 찾는다. 토종 영덕대게가 비씨고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불가피하게 러시아산을 맛보는 추세다. 대게타운거리에는 100여 게 전문집이 줄지어 있는데 대부분 원산지 표시를 해놓고 팔고 있다. 

대게타운거리 맞은편 바다 쪽에 공판장이 있다. 싱싱한 대게가 옮겨지면 바로 경매가 이뤄진다. 대게를 맛을 즐기는 방식은 현장에서 대게를 구입해 손질을 해주는 곳과 밑반찬과 함께 상을 차려주는 대게직판장을 이용하거나 대게타운거리 식당에서 바로 주문해 먹는 두 가지가 있다. 

영덕대게


공판장 옆 포장마차 형태로 운영하는 대게가게 할머니를 만났다. 큰 아들은 포항에서 자영업을 하고 작은 아들은 마산에서 직장을 다닌다고 했다. 대게 팔아 모두 대학 보내고 이제는 먹고 살만큼 산다면서 손자와 손녀 등록금이며 용돈도 챙겨주며 원 없이 산다며 웃었다. 할머니의 행복한 미소가 나그네의 마음도 더불어 행복하게 했다. 

강구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슈퍼 앞 파라솔 아래서 대게에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 방파제 등대 아래서 피데기에 소주잔 돌리는 풍경들이 여유롭다. 방파제등대는 낚시 포인트라서 강태공들이 많았다. 강구항 포인트는 봄과 여름에 씨알이 최고다. 도다리, 볼락, 우럭이 주 어종. 배를 타고 나가면 방어, 가자미, 돔이 많이 잡힌다. 강구항에서 5분 거리인 하저해수욕장 갯바위 낚시와 20분 거리의 장사해수욕장 앞바다가 연중 낚시 포인트로 알려졌다.

진나라 필탁(畢卓)처럼 오른손에 술잔, 왼손에 게발 뜯어 들고 두둥실 떠있는 배에서의 여유와 낭만은 아니지만 저마다 행복한 모습들이다. 특히 하늘에 갈매기 풀어놓고 통통대며 들어오는 어선들의 평화로운 풍경, 공판장과 노점할머니까지 살아 파닥이는 삶의 현장, 그런 풍경 속에서 배인 체취들은 숙소로 돌아와서도 오래도록 진한 키토산과 행복한 향기로 파도쳤다. 

강구항 등대와 어선

연인, 가족과 함께 아늑한 바다여행 코스를 조용히 음미하고 싶다면 강구항과 건너 오포등대가 좋다. 좀 더 긴 코스를 원한다면 블루로드 걷기코스가 있다. 트레킹과 걷기코스로 어우러진 구간별 코스는 총 약 50km 거리다. 

1코스는 강구항-고불봉-풍력발전소-빛의 거리-해맞이공원 구간으로 17.5km다. 2코스는 해맞이공원-석리-대개원조마을-축산항에 이르는 15km 구간이다. 3코스는 축산항-봉수대-목은이색산책로-괴시리전통마을-대진해수욕장-청소년야영장-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17,5km 구간이다. 문의: 영덕군청(054-730-7201)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섬TV

신경림, '갈대'

신경림,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타인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자

타인의 섬으로 여행을 떠나자

‘몰디브, 보라보라, 발리......’ 신문에서 자주 접하는 섬들이다. 이곳에는 무성한 야자수와 금가루 같은 백사장, 그리고 돈 많은 관광객이 있다
日・中, 우리바다 넘본 이유

日・中, 우리바다 넘본 이유

대한민국은 3면이 바다인 해양민족이다. 늘 푸른 바다, 드넓은 바다, 3000여 개가 넘는 섬들은 우리네 삶의 터전이자 해양사가 기록되고 해양문화가 탄
화성시 서신면 전곡항 등대

화성시 서신면 전곡항 등대

화성시 전곡항은 시화방조제가 조성되면서 시화호 이주민을 위해 조성한 다기능어항이다. 항구는 화성시 서신면과 안산시 대부도를 잇는 방파제가 건
충남 당진시 송악읍 안섬포구 등대

충남 당진시 송악읍 안섬포구 등대

아산만 당진시 안섬포구는 서해안 간척 시대의 어제와 오늘, 서해 어촌이 걸어온 길과 관광 대중화에 발맞춰 섬과 포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
군산시 옥도면 무녀도

군산시 옥도면 무녀도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신시도에서 고군산대교를 지나면 무녀도다. 무녀도는 선유대교를 통해 선유도와 장자도와 연결돼 차량으로 고군산군도를 여행
(7) 푸른 하늘, 푸른 잎의 미학

(7) 푸른 하늘, 푸른 잎의 미학

봄이 왔다. 푸른 하늘이 열리는 청명을 지나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는 곡우를 앞두고 봄비가 내렸다. 농어촌 들녘마다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나 올 농
(7) 떠나가고 싶은 배

(7) 떠나가고 싶은 배

코로나로 모두가 묶여 있은 세상. 떠나고 싶다. 묶인 일상을 풀고 더 넓은 바다로 떠나고 싶다. 저 저 배를 바라보면서 문득, 1930년 내 고향 강진의 시인
(6) 호미와 삽

(6) 호미와 삽

소만은 24절기 가운데 여덟 번째 절기다. 들녘은 식물이 성장하기 시작해 녹음으로 짙어진다. 소만 무렵, 여기저기 모내기 준비로 분주하다. 이른 모내
신경림, '갈대'

신경림,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그 섬에 다시 갈 수 있을까

그 섬에 다시 갈 수 있을까

아마추어 사진동호회의 총무, K의 전화를 받은 건 며칠 전이었다. 모처럼의 통화였지만 K의 목소리는 어제 만나 소주라도 나눈 사이처럼 정겨웠다. &ldqu
하와이 제도 <7> 하와이 아일랜드

하와이 제도 <7> 하와이 아일랜드

하와이 아일랜드는 하와이 제도에서 가장 크고 제일 어린 섬이다. 빅 아일랜드라는 별명에 걸맞게 다른 하와이의 섬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거의 두 배